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민주-평화-인권-통일 남기고 떠난 ‘인동초’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18일 서거했다. 향년 85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이날 오후 연세대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43분(한국시간) 서거하셨다”며 “부인 이희호 여사와 김홍일 홍업 홍걸 3형제, 며느리 등 가족과 측근들이 임종을 했다”고 발표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폐렴으로 입원,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증세가 호전돼 22일 일반병실로 옮겼으나 하루 뒤 폐색전증이 발병하면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치료를 받아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큰 정치지도자를 잃었다”며 “김 전 대통령의 생전의 뜻이 남북화해와 국민통합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고 말했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여야 정치권도 심심한 애도를 표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시카고와도 인연이 깊다. 지난 1980년대 미국 망명 시절 시카고를 자주 찾아 한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대통령이 된 뒤 2001년 3월 시카고를 찾아 고마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1박 2일 일정이었지만 동포간담회를 여는 등 많은 일정을 소화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리차드 데일리 시장에게 “한인동포들은 시집보낸 딸 자식 같다”며 각별한 관심을 당부했다. 이에 앞서 김 전 대통령은 미국 망명시절인 1983년 레익텍고교에서 강연회를 개최, 1천여명의 한인을 대상으로 한국의 민주화는 반드시 이뤄진다고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24년 1월 6일 전남 신안에서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 김운식과 어머니 장수금의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목포 북교초등학교와 5년제인 목포상고를 졸업한 뒤 목포일보 사장을 지냈으며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63년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 7, 8, 13,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전 대통령은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나섰으나 당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석패한 뒤 87년, 92년 대선에서 연거푸 낙선했으나 97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과 인권신장, 통일운동에 평생을 헌신해 독재 종식과 민주주의 정착, 한반도 평화 조성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대통령 재임 기간, 6.25 전쟁 후 최대 국난이었던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해방 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화해협력 시대를 열었다. 김 전 대통령은 그 공로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