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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미주한인사회도 북한도 ‘애도의 물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18일 한국 곳곳에 분향소가 설치돼 추모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각 분양소마다 노인부터 어린이들에게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이 찾아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으며 일부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오열하기도 했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도 서거 하룻만에 조전을 보내 ‘심심한 애도의 뜻’을 전했다. 또 미주한인사회도 갑작스런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미주 한인사회= 미주 한인들도 김 전 대통령의 서거소식에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다”며 큰 안타까움과 함께 깊은 애도를 표시했다. 김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두 차례 망명생활을 하던 시절 김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던 재미동포와 미국인 등은 김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한 재미동포추모위원회를 구성했다. 추모위원회에는 1972년과 1983년 김 전 대통령의 망명 시절에 직접 인연을 맺었던 인사 80여명이 참여했다. 샌프란시스코 등 북가주 지역 한인들은 남북통일과 민주화를 위해 평생 헌신해온 김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경색된 남북관계에 새로운 화해의 계기가 마련되고 국내적으로도 갈등과 반목을 넘어서 국민적인 화합을 이룰 수 있는 대통합의 전기가 되길 기원했다. 샌프란시스코 지역 한인회 김상언 회장은 “조국을 위해 평생 헌신하던 분이 돌아가셨다”면서 “병환 중에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크게 놀랐다”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은 이날 오후 민원대기실에 분향소를 설치했다. 조문 시간은 오전 9시30분~정오, 오후 1시30분~오후4시30분까지로 지역 한인들에게 개방된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9일(한국시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조전을 보내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 김 위원장은 김 전 대통령의 유가족들에게 보낸 조전에서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였다는 슬픈 소식에 접하여 리희호 녀사와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라고 말했다고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이어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애석하게 서거하였지만 그가 민족의 화해와 통일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길에 남긴 공적은 민족과 함께 길이 전해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일 위원장의 조전은 김 전 대통령 서거 하루만에 발표된 것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때는 이틀 후 발표했었다. 김 위원장이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신속히 조전을 보냄에 따라 이번 장례기간 조문단을 파견할지도 주목된다. ■장례= 이명박 정부는 김 전 대통령의 장례형식과 관련, 국장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과 김 전 대통령 유족측은 국장을 정부측에 요청했으며 정부는 19일 국무회의에서 최종 방침을 결정할 예정이다. 장례의 격을 국장으로 올리되, 6일장으로 해 일요일인 오는 23일 영결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하는 절충안이 검토되고 있다.

2009-08-18

[시카고 한인들의 반응(무순)] '경제위기 극복한 지도자'…장기남(한인회장) 외

"한인 동포를 대신해 훌륭한 지도자를 잃은 것에 대해 진심으로 애도를 표한다. 한국이 IMF 경제위기에 처했을 때 김 전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위기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또 남북화해 무드를 조성해 이산가족들이 상봉할 수 있게 한 것은 큰 업적이다. 평통위원으로 한국을 방문, 김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는데 고통속에서도 꿋꿋이 민주화를 위해 싸워왔고 한국이 현재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도록 기여하신 분이다. 고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전세계에서 으뜸가는 민주화 국가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의지의 정치인'…김덕규 전 국회부의장 5선 국회의원인 김덕규 전 국회부의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선봉에 섰던 동지를 잃었다“며 안타까워 했다. 김 전 부의장은 "명 대변인으로 민주화 운동에 나섰던 김 전 대통령은 엄청난 시련과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의지의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현재 노스웨스턴대학 로스쿨 교환교수로 시카고에 머물고 있는 김 전 부의장은 시카고에서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을 잇따라 떠나 보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는 한인회에 차려진 분향소를 지켰지만 이번에는 한국에 들어가 장례식에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춘호 기자 polipch@koreadaily.com

2009-08-18

침묵과 슬픔 속 애도 물결…시카고 한인사회 비통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시카고 한인들은 안타까움과 함께 깊은 애도를 표했다. 18일 밤 11시30분 경(시카고 시각) 한국 관련 뉴스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속보를 접한 한인들은 늦은 밤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을 통해 직접 확인했다. 출근길 뒤늦게 소식을 접한 한인들은 김 전 대통령의 서거에 놀라워했다. 점심시간 삼삼오오 한인 식당을 찾은 한인들은 올해 들어 지난 2월 16일 종교계를 이끌었던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하고, 5월 23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이어 김 전 대통령 서거 등 한국 현대사를 이끈 거목들의 연이은 비보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달 13일(한국 시각) 김 전 대통령이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한 시카고 한인들은 ‘설마’라는 마음으로 쾌유를 기원하기도 했다. 미주 민통련 마지막 회장을 역임한 김종웅(68) 씨는 “김 전 대통령과는 선친 때부터 정치적으로 연을 맺어왔다. 김 전 대통령 미주 망명 시(1982년) 경제적 도움과 시카고 방문 시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함께 고민했었다”며 “개인적으로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조국을 위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사신 분이다. 과거 정권으로부터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아 행동반경이 적었다. 조국을 위해 더 큰일을 했을 분”이라고 평가했다. 마운트 프로스펙트에 거주하는 석주홍(51) 씨는 “어린 시절 한국을 떠나 한국 정치인은 잘 모르지만 민주화를 이끌었던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한인의 한 사람으로 한국 정치의 정신적 지도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각 지역 향우회 회장들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와병 중이란 소식에 쾌차하실 것으로 기대했다. 지역으로 갈라졌던 한국인의 마음을 화합으로 이끌었으며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제2의 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든 전직 대통령으로 한인들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편 시카고 총영사관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처럼 영사관내 빈소를 설치했으며 한인회와 호남향우회는 한인회에 공동으로 빈소를 마련했다. 총영사관 이영용 부총영사는 “정부 지침을 기다리고 있다. 노 전 대통령 당시와 비슷한 수준으로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임명환 기자 mhlim@koreadaily.com

2009-08-18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민주-평화-인권-통일 남기고 떠난 ‘인동초’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을 지낸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18일 서거했다. 향년 85세.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이날 오후 연세대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시43분(한국시간) 서거하셨다”며 “부인 이희호 여사와 김홍일 홍업 홍걸 3형제, 며느리 등 가족과 측근들이 임종을 했다”고 발표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폐렴으로 입원, 중환자실에서 집중치료를 받고 증세가 호전돼 22일 일반병실로 옮겼으나 하루 뒤 폐색전증이 발병하면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치료를 받아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큰 정치지도자를 잃었다”며 “김 전 대통령의 생전의 뜻이 남북화해와 국민통합으로 이어지기를 기원한다”고 말했고,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여야 정치권도 심심한 애도를 표시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시카고와도 인연이 깊다. 지난 1980년대 미국 망명 시절 시카고를 자주 찾아 한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대통령이 된 뒤 2001년 3월 시카고를 찾아 고마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1박 2일 일정이었지만 동포간담회를 여는 등 많은 일정을 소화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은 리차드 데일리 시장에게 “한인동포들은 시집보낸 딸 자식 같다”며 각별한 관심을 당부했다. 이에 앞서 김 전 대통령은 미국 망명시절인 1983년 레익텍고교에서 강연회를 개최, 1천여명의 한인을 대상으로 한국의 민주화는 반드시 이뤄진다고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24년 1월 6일 전남 신안에서 가난한 농부였던 아버지 김운식과 어머니 장수금의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목포 북교초등학교와 5년제인 목포상고를 졸업한 뒤 목포일보 사장을 지냈으며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63년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 7, 8, 13, 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 전 대통령은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나섰으나 당시 공화당 후보로 출마한 박정희 대통령에게 석패한 뒤 87년, 92년 대선에서 연거푸 낙선했으나 97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김 전 대통령은 민주화 투쟁과 인권신장, 통일운동에 평생을 헌신해 독재 종식과 민주주의 정착, 한반도 평화 조성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대통령 재임 기간, 6.25 전쟁 후 최대 국난이었던 외환위기를 극복했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해방 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화해협력 시대를 열었다. 김 전 대통령은 그 공로로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009-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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